사유의 구조

Park Jin Kyu

2020. 10. 13 -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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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사학자이자 미술 이론가, 평론가인 로잘린드 크라우스(Rosalind Krauss)는 그의 저서 그리드 (Grids)에서 그리드(격자무늬)의 출현이 모던 아트의 진전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였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그리드가 “현대미술의 근대성을 선언하는 역할을 한다”고 집필하였다. 처음 그 중요성이 인식되기 시작한 20세기 초의 러시아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Kazimir Malevich)와 네덜란드 작가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의 추상화 작품들부터 1960년대의 아그네스 마틴(Agnes Martin)과 솔 르윗(Sol LeWitt)의 작품활동에 근원적인 요소로 자리매김하기까지, 그리드는 모던 아트의 발전에 있어 가장 주된 요소 중 하나였다. 그리드의 사전적 정의가 단순히 “가로, 세로의 직선이 같은 간격으로 직각으로 교차해 나가는 모양의 무늬”라는 점을 고려할 때, 그리드는 미리 정해진 질서 혹은 구조를 제시하고, 작가들에게는 이 개념에 순응하거나 더 나아가 탐구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진다. 전 세계의 차세대 예술가들은 이 그리드에 관한 발상을 자유롭게 실험해 왔고 이는 박진규 작가의 작품에도 드러난다.

박진규의 2차원적 평면 위에 세워진 3차원적 구조는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세심하고 체계적인 페인트 선들로 구성되어 매우 독특한 공간감을 만들어 낸다. 이는 마치 캔버스 위에 지어진 건축물과 같다. 작가는 전통적인 회화 방식과는 달리 자신 만의 특별한 기법을 개발하였다. 그는 고전적이고 일반적인 붓 대신 주사기의 원리를 이용한 도구로 작업을 한다. 그의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교차하는 선들이 여러 층을 형성할 때 까지 수평 및 수직으로, 또는 대각선으로 물감을 한 줄 한 줄 조심스럽게 쌓아가는 행위의 반복이다. 생각해보면 작가의 작품의 물리적 기반이 되는 캔버스는 이미 격자의 한 형태이다. 입체적이고 단단한 페인트 선들은 모직으로 꼼꼼히 짜여진 캔버스 위에 겹겹이 쌓인 추가적인 그리드 층들인 셈이다.

            

작가노트를 인용하자면 박진규는 “작업을 통해 ‘사유의 구조’를 만들어 가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다.” 반복해서 페인트 선들을 만들어내는 행위는 고도의 집중력과 인고의 시간을 요구하기에 고되고 통제된 과정으로 비추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작가에게 이 과정의 시간은 새로운 질문을 생산하고, 배우며, 자기 성찰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선을 긋는 행위를 ‘사유의 이분화’를 나타내는 행위로 보는 작가의 견해로부터 우리는 ‘이분화’라는 개념이 그의 엄청난 숙고의 결과임을 알 수 있다. 선 자체가 캔버스를 두 부분으로 나누듯, 선을 긋는 하나의 유한한 행위는 이분화의 수많은 예시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이 행위가 여러 번 반복되면 앞서 언급한 ‘사유의 구조’의 형성에 가까워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드로부터 영감을 받아 시작한 대부분의 현대미술 작품들과 미술사의 수많은 선례들과는 달리 박진규의 작업의 주요한 특징은 그리드가 여러 층에 축적되어 평면적이 아닌 3차원적 구조를 완성시키다는 점이다. 이 유일무이한 결과물은 그리드의 구조적이고 규제된 경계가 입체적으로 확장됨에 따라 작가 자신뿐 아니라 감상자로 하여금 작품 내에 존재하는 담론을 탐구할 수 있는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제공한다.

박진규의 작업은 그 자체로 유한함과 무한함의 이분화이다. 각각의 선 또는 그 선을 긋는 행위는 유한하고 일시적이지만 여전히 작가의 사유와 이분화라는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반복과 축적을 통해 작품 속 담론은 보편화되고 무한해져 대중이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논리적으로 보았을 때 그리드는 모든 방향으로 무한대로 확장된다”는 크라우스의 말처럼, 그리드의 확장성은 박진규의 작업 전반에 걸쳐 널리 퍼져 있으며, 그의 작업이 누구에게나 자유로운 해석과 이해의 영역으로 간주되길 원한다는 작가의 바람을 반영한다.

​최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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